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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법무법인 에스 인터뷰-시세 조작, 독소 조항 등 '부동산 작전 세력'
“부동산 작전 세력을 수개월간의 기획조사 끝에 적발했다. 반시장적 수단으로 시장을 파괴하는 행위는 반드시 차단하겠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정부가 칼을 빼들었다. 집값을 시세보다 높게 거래했다고 신고한 뒤 나중에 취소하는 수법으로 이뤄진 자전 거래, 시세 교란 행위를 가만히 두고 보지 않겠다는 엄포다.
이른바 단타 매매 등으로 주가를 조작해 차익을 올리는 행태와 다를 바 없다는 논리다.
국토교통부는 최근 허위로 높은 가격에 계약한 뒤 나중에 취소하는 ‘집값 띄우기’ 수법에 대한 기획조사를 벌인 결과 무더기 위법 의심 행위를 적발했다. 2021년부터 올 2월까지 2년여간 이뤄진 아파트 거래 중 집값 띄우기로 의심되는 1086건을 조사해 위법 의심 행위 541건을 적발했다. 이번에 드러난 사례 외에도 부동산 작전 사례는 무수히 많다.
(1) 공인중개사가 시세 조작 개입
신고가 허위 신고로 집값 띄워
주택 거래를 성실히 도와야 할 공인중개사가 직접 시세 조작에 개입한 사례가 부지기수다.
공인중개사를 믿고 거래한 실수요자 입장에서 뒤통수를 맞는 경우가 허다하다.
A씨는 2021년 6월 전북의 한 아파트를 신고가인 1억5000만원에 거래했다고 신고했다.
이후 1억2000만원을 유지하던 실거래 가격이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A씨는 곧바로 거래 해제를 신고한 뒤 그해 8월 B씨에게 원래 보유하던 같은 평형 아파트를 1억4800만원에 팔아 시세 차익을 거뒀다. 신고가 허위 신고로 불과 두 달 만에 집값을 띄운 셈이다.
A씨는 이런 방식으로 2년간 지방 아파트 단지 4곳에서 무려 44가구를 매수한 뒤 41가구를 매도했다.
이를 통해 매수가 대비 25.1%에 달하는 시세 차익을 올렸다. 이 과정에서 특정 공인중개사가 반복적으로 가담하는 등 중개인과의 공모가 의심된다.
C씨는 자신의 아파트를 3억7800만원에 매도했다고 신고한 뒤 두 달 만에 계약을 해제했다.
그런데 거래 당사자와 공인중개사는 계약 해제와 동시에 계약서를 파기했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계약금 4000만원을 실제 지급했는지, 거래를 도운 공인중개사가 중개 수수료를 받았는지조차 확인되지 않았다.
또한 이 중개사는 이 단지의 같은 평형 중 신고가로 계약 신고, 해제를 두 차례 반복한 것으로 드러나 집값 띄우기에 가담했다는 의심을 받는다.
공인중개사의 시세 조작 개입은 지역을 가리지 않는다.
경기도에 거주하는 매도, 매수인이 충남에 위치한 아파트를 거래할 때 멀리 대구 소재 공인중개사가 중개한 사례가 있었다.
거래 이후 2개월 만에 계약이 해제됐는데 이후 과정이 석연치 않다. 매도인이 다른 매수인에게 해제 사례와 같은 신고가로 매도한 데다, 같은 단지에서 8회에 걸쳐서 반복 거래, 해제하는 등 전형적인 자전 거래가 의심된다.
전세사기인지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눈감아주거나 오히려 전세사기에 가담한 공인중개사도 적지 않았다.
경기 고양시에서 공인중개사로 일하는 D씨는 2019년부터 2020년까지 2년간 보증 사고가 17건 발생한 주택을 중개했다.
피해자들이 돌려받지 못한 보증금만 무려 35억원에 달한다. 이들 주택은 임대차 계약이 이뤄진 뒤 주인이 바뀌었는데 새 주인은 다른 지역에서도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이른바 ‘바지임대인’이었다. D씨는 전세사기 물건을 중개하면서 신축 빌라 분양, 매매, 전세 광고까지 진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심지어 국내에 없는 공인중개사 명의로 중개보조원이 버젓이 중개 업무를 한 사례도 있었다.
경남 김해의 중개보조원 E씨는 베트남에서 체류 중인 공인중개사 대신 전세 계약을 다수 체결했다.
E씨는 공인중개사 이름은 물론 중개사무소 명칭을 사용해 몰래 중개 업무를 해왔다.
계약서에 직접 서명한 건도 18건이나 됐다. 이들은 결국 경찰 수사를 받게 됐고 베트남에 체류 중인 공인중개사의 중개사 자격과 등록은 취소됐다.
위임장 없이 대리인 계약을 체결하게 한 사례도 있다. 부산 해운대에 거주하는 F씨는 2020년 3월 임대차 계약을 맺으면서 임대인이 아닌 대리인과 계약을 맺었다.
계약 당시 중개사로부터 “대리인도 오피스텔 여러 채를 보유해 믿을 만한 사람이며 추후 위임장을 주겠다”는 약속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3개월이 지나도록 중개사는 위임장을 주지 않았다. 임대인과 대면 후 계약서를 다시 작성하자는 요구도 차일피일 미뤘다. 국토부는 대리인이 소유한 오피스텔 여러 채에 가압류, 근저당이 설정돼 있는 만큼 전세사기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중개사와 대리인, 임대인 모두를 수사 의뢰했다.
(2) 법인과 직원 간 거래 공모
특수관계인 사이에 벌어진 ‘자전 거래’
개인뿐 아니라 법인이 시세 조작에 나서는 경우도 적잖다. 부산광역시에 위치한 G법인은 2021년 12월 분양받은 아파트를 법인 직원 H씨에게 3억4000만원 신고가로 매도했다고 신고했다. 하지만 H씨는 9개월 후인 지난해 9월 계약을 해지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법인 태도가 석연치 않았다. G법인은 계약금을 몰취하지 않고 도로 H씨에게 반환했다. 그 사이 추격 매수가 붙어 아파트 실거래가가 올랐고 G법인은 보유한 주택 여러 채를 신고가 수준에 매도했다. 매매 계약을 허위로 신고해 시세를 띄운 후 보유 주택을 비싼 가격에 팔아 시세 차익을 올렸다고 의심할 만한 사례다.
경기도의 I법인 대표는 2021년 12월 한 법인에 아파트 3가구를 신고가로 매도했다 두 달 후 계약 해제를 신고했다. 3건의 거래 모두 계약금을 비롯한 거래 대금 지급 내역이 없다. 그중 한 채는 계약 해제 후 다른 법인에 더 높은 가격으로 팔아치우면서 집값 띄우기에 성공했다.
(3) 가족 간 자전 거래
계약서도 없이 허위 매매 계약 신고
보통 가족 간에는 계약서 없이 거래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악용해 집값 띄우기에 나선 사례도 있다.
J씨는 2020년 7월 부모에게 서울 아파트를 매도했다. 매도 가격은 17억8000만원으로 신고가였다.
J씨는 6개월 후 위약금 없이 매매 대금을 모두 반환하고 계약 해제를 신고했다.
이 과정에서 공인중개사에게는 중개 수수료로 200만원만 지급했다. 부모와 딸, 공인중개사 3자가 공모한 ‘집값 띄우기 자전 거래’ 의심을 받고 있음은 물론이다.
부산에서는 2021년 3월 모친과 아들이 계약서 없이 구두로 종전 최고가(3억8000만원)보다 높은 4억2000만원 신고가에 아파트 매매 계약을 체결했다고 신고했다. 이후 1년 뒤 계약을 취소했는데 그동안 계약금을 비롯한 거래 대금을 일절 지급하지 않았다.
역시 실거래가를 띄우기 위한 자전 거래로 의심되는 사례다.
새롭게 진화한 작전 유형은
잔금 지급 않고 먹튀 사례 쏟아져
정부가 부동산 시세 조작을 주도하는 작전 세력을 대거 적발했다지만 적발 수나 유형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이번 적발 사례 중 자전 거래·허위 신고 건수는 32건으로, 지난 5월 전국 아파트 매매 건수(3만7727건)를 기준으로 해도 0.1%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부동산 시장을 교란하는 작전 유형은 더 다양하고 치밀하다”는 것이 전문가들 한목소리다.
# 장면 1. K씨는 L개발회사와 시가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부동산 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매도인인 K씨가 먼저 소유권이전등기를 해주고, 잔금은 두 달 뒤에 지급하기로 계약했지만 깜깜무소식이었다. 급기야 K씨는 L개발회사를 상대로 잔금 대금 청구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고, L개발회사 계좌 등에 압류를 시도했지만 이미 계좌에 잔액이 없다고 회신이 온 상태였다.
# 장면 2. M씨와 N개발회사는 시가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매매 계약을 체결하면서 잔금 지급 시기를 “지구단위계획 결정 고시 후 3개월 이내”라는 애매한 시기로 정했다. 지구단위계획 결정 고시가 계속 미뤄지는 가운데, 계약을 체결한 지 상당 기간이 지난 이후 N개발회사는 잔금 지급을 이행하면서 M씨를 상대로 소유권이전등기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두 장면의 공통점은 법인인 개발회사가 소유주에게 시가보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했다는 것.
소유주가 좋은 거래 조건에 정신이 팔린 사이, 개발회사는 소유주에 대한 독소 조항을 계약서에 슬쩍 끼워 넣었다.
상대방이 채무 이행을 제공할 때까지 자기 채무의 이행을 거절할 수 있는 권리인 ‘동시이행항변권’을 포기하게 하거나 잔금 지급 시기를 애매하게 설정하는 방식이다. 소유주로서는 이 같은 독소 조항이나 경우의 수를 예상하지 못해 불이익을 입게 된다.
장면 1과 같이 잔금을 지급하지 않고 ‘먹튀’하거나, 장면 2처럼 잔금 지급 시기가 매매 계약 시보다 상당 기간이 지나 실질적으로 손해인 경우가 생기는 이유다.
# 장면 3. O씨는 부동산 거래 상대방의 ‘업(UP)계약서’ 작성 요구에 응했다가 과태료 납부, 양도소득세 감면 배제, 중개 수수료 초과 지급 등의 피해를 봤다. 매매 대금을 실제보다 높여 계약서를 작성하는 매수인의 업계약서 요청에 O씨는 비싼 매매 대금으로 이득을 볼 생각에 승낙했다. 해당 거래는 공인중개사의 중개 아래 이뤄졌고, 이후 시세는 뛰어올랐다.
# 장면 4. P중개사무소는 부동산 온라인 플랫폼에 매물을 올린 Q씨에게 접근해 팔아주는 조건으로, 매도 희망가인 1억7500만원보다 더 높은 2억원에 계약서를 쓰자고 제안했다. 이와 동시에 세입자를 유인해 2억원의 보증금으로 전세 계약을 체결한 뒤 중간에서 2500만원을 수수료로 챙겼다가 적발됐다.
부동산을 거래할 때 실제 시세보다 높은 ‘업계약서’를 작성해 시세를 부풀리는 행위도 부동산 시장을 교란하는 대표적인 작전 중 하나다. 특히 장면 4의 중개사무소처럼 업계약서 작성 시 공인중개사에게는 중개 보수를 초과하는 리베이트가 생겨 불법 중개 행위로 적발되는 사례가 적잖다. 장면 3에 대해 대법원은 부동산거래신고법을 위반한 공인중개사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지만, 매도자 O씨도 업계약서 요청에 응한 과실이 있어 공인중개사의 손해배상은 60%로 제한됐다.
국토교통부는 2017년부터 부동산 거래 허위 신고 사실을 자진 신고한 자에 과태료를 감면해주는 ‘리니언시 제도’를 운영해왔다.
하지만 업계약서 수법은 지금도 전세사기에 끊임없이 이용된다. 경찰은 지난 7월 업계약서 수법으로 시세를 부풀려 전세보증금을 비싸게 받은 후 차익을 나눠 가진 전세사기 일당 91명을 붙잡아 20명을 구속하기도 했다.
조성근 법무법인 에스 변호사는 “허위 신고, 해제 신고 미이행이나 등기를 게을리하는 등의 방식으로 부동산 시장을 교란하는 조직적인 움직임이 확인되고 있다”며 “과태료뿐 아니라 범죄로 인한 수익금을 추징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 대책 효과 낼까
시세 조작 처벌 강화에도 실효성 의문
“부당하게 재산상 이득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할 목적으로, 거짓으로 부동산 거래에 관해 신고한 자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오는 10월 19일 시행되는 부동산거래신고법 개정안의 핵심 내용이다.
그동안 ‘3000만원 이하 과태료 부과’에 그친 현행 처벌 규정이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이 적잖았다.
이에 국토부가 집값 띄우기를 근절시키기 위해 내놓은 개정안의 핵심이 처벌 강화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부동산 작전을 통해서 얻는 이익이 과태료보다 훨씬 높아서 과태료 3000만원 수준은 너무 적었던 만큼 처벌 강화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전까지 처벌 규정은 공인중개사에 대해서만 존재했다. 하지만 개정안에 따라 공인중개사뿐 아니라 불법적으로 활동하는 브로커, 거래하는 당사자까지도 형사 처벌을 할 수 있게 됐다.
물론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전문가들은 처벌 규정도 중요하지만 시세 조종 적발 건수가 적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김예림 법무법인 심목 대표변호사는 “이미 공인중개사법에는 공인중개사의 시세 조작 등에 관해 과태료 부과·형사 처벌이 가능하고, 국토교통부에서 등록 취소까지 할 수 있도록 했지만 실제로 처벌이나 등록 취소 처분이 이뤄진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라며 “보다 적극적으로 적발해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처벌 규정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힘을 얻는다. 정석현 법무법인 태건 변호사는 “시세 조종 행위에 대해 5년 이하 징역이나 2억원 이하 벌금 등을 부과하는 자본시장법에 비해 부동산거래신고법은 처벌 정도가 약하다”며 “국민 대다수 자산에 부동산 비중이 큰 만큼 시세 조작에 대한 형이 보다 엄해질 필요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집값 띄우기’ 검증 시스템을 어떻게 강화할지는 정부의 여전한 난제다. 국토부는 “시세 조종 여부에 대해 집중 모니터링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구체화 방안은 보이지 않는다. 국토부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부동산 불법 행위를 적발해내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선아 법무법인 이로 변호사는 “시세 조작으로 인한 피해는 현실적으로 피해 복구가 어렵다”며 “과태료 부과나 벌칙 규정 강화 같은 사후적인 조치보다는 시세 조종 여부를 미리 모니터링하고, AI를 활용해 이상 거래를 선별해내는 등 사전적 조치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에서는 AI가 부동산 불법 행위를 기술적으로 완벽하게 잡아낸다고 해도 ‘사기 목적’을 입증하는 건 별개의 문제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만약 1억2000만원을 1억5000만원으로 3000만원 높여서 거래했어도 비싸게 산 타당한 이유가 있으면 못 잡는다”며 “3000만원을 기준으로 처벌하겠다고 해도 1000만원으로 여러 번 거래하는 수법으로 진화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나마 정부가 부동산 거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등기 정보를 공개하기로 한 점은 눈길을 끈다. 지난 7월 25일부터 아파트 실거래 정보 공개 시 등기 완료 여부와 등기일을 공개하고 있다. 이에 따라 부동산 거래 시 단순 시세 확인 외에도 해당 시세가 조작된 시세는 아닌지 등기 완료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수요자 입장에서 해당 물건에 전세가 들어갔는지, 설정은 얼마나 됐는지 또 누가 사고 얼마에 거래됐는지 알 수 있다”며 “거래된 사례와 가격까지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수요자가) 턱없이 비싸게 사거나 속지 않을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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