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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조선]'여성판 N번방'의 불편한 진실- 법무법인에스 임태호대표변호사 인터뷰

'N번방' 남용하는 세계 1위 남녀갈등국
유튜버도 변호사도 참전… 남녀갈등이 돈벌이 수단 돼버렸다


"가해자가 여성이기 때문에 언론과 경찰이 침묵해왔다." 최근 '여성판 N번방'이라고 보도됐던 사건이 젠더갈등으로 번진 데에는 '이중잣대' 논란이 있었다. 해당 보도를 접한 많은 누리꾼들은 가해자가 여성이었기 때문에 'N번방'과 같은 파렴치한 행위가 똑같이 성행함에도 불구하고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았다고 봤다. 더 나아가 최근 성상품화를 이유로 일본 AV 배우들이 나오는 '성인 페스티벌'을 반대했던 바로 그 커뮤니티가 남성을 성상품화하고 있었다는 내로남불적 행태에 분노했다. 허은아 개혁신당 대표와 나경원 국민의힘 당선인이 해당 여성 가해자들에 대해 "수년 전 극심한 피해를 준 N번방 가해자들과 동일한 잣대의 엄벌을 내려야 한다"며 목소리를 낸 것도 이 같은 '불공정'에 쏟아지는 분노를 어루만져주기 위해서였다.

84만여명 규모의 국내 최대 여성 커뮤니티의 일부 유저들 사이에서 공유돼 문제가 되고 있는 '여성판 N번방'의 내용은 크게 네 가지다. △ 데이팅 앱을 사용하는 주한미군의 개인정보 리스트를 만들어 공유했다는 점 △ 이들의 셀카, 탈의 사진 등을 공유하며 성적 희롱 발언과 품평을 했다는 점 △ 불법촬영으로 유추되는 사진도 있다는 점 △ 성희롱 대상에는 미성년자도 있어 보인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이는 명백히 범죄의 소지가 있다. 상대방의 신상을 동의 없이 공유하고, 몸매와 성기 등과 관련한 구체적인 단어를 외설적으로 언급했기 때문이다. 임태호 변호사(법무법인 에스)는 "게시글의 스펙트럼이 매우 다양해 적용될 수 있는 법의 해석도 다양하다"며 이렇게 지적했다. "상대방의 신체 등을 불법촬영하여 공유하거나, 타인의 성적촬영물을 동의 없이 공유한 경우 '카메라등이용촬영죄(촬영물유포 등)'로 처벌받을 수 있다. 동의 없이 상대방의 신상정보를 공유했다면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 처벌받을 수 있다. 만남 후기를 올리는 과정에서 상대방에 대한 구체적인 사실을 적시한 경우 '사이버 명예훼손죄'가 성립될 수 있다. 나 자신 혹은 상대방의 성적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킬 수 있는 콘텐츠를 공유했다면 '통신매체이용음란죄'로 처벌받을 수 있다."

다만 지금까지 유튜브나 언론보도를 통해 공개된 내용만으로는 몇 년 전 문제가 됐던 'N번방' 사건과는 다소 성격이 다르며 이에 따른 범죄 혐의, 처벌 수위, 처벌될 가능성도 다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주간조선 취재 결과 문제가 된 '주한미군 리스트' 내용에는 몸매 품평과 신상정보가 포함되어 있었으나, 대부분의 정보가 성병 여부, 성관계 시 콘돔 사용 여부, 성범죄 이력 여부, 결혼 및 연애 여부, 성매매 경험 여부, 데이트 매너 등의 내용이었으며, 오히려 위험을 피하고자 하는 '블랙리스트' 성격이 강했다. 또한 남성들의 나체 사진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데이팅 앱이나 소셜미디어(SNS)에 본인이 직접 올린 상의 탈의 사진이 대부분이었다. 성기를 언급하는 발언은 만연했으나 성기가 직접 노출된 사진은 찾아볼 수 없었다. 미성년자의 셀카를 올리고 성희롱성 발언을 한 경우도 있었으나 공개된 사례는 단 두 건이었고, 불법 촬영이라고 일컬어지는 사례의 경우 신원특정이 되지 않는 뒷모습, 길거리에서 멀리 찍힌 모습 등 아주 일부인 것으로 확인됐다.

여성판 N번방에서 공유됐던 외국인들의 사진.
여성판 N번방에서 공유됐던 외국인들의 사진.


N번방과 '여성판 N번방'은 다른 범죄다

임 변호사는 "게시글과 댓글 내용을 모두 확인해봐야겠지만, 밝혀진 내용만을 보았을 때 법적으로만 살펴본다면 여성판 N번방은 기존 N번방에 비해 경미한 처벌을 받거나 처벌을 받지 않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며 "미성년 남성의 사진을 올려놓고 성적으로 품평하는 글은 아청법이나 아동복지법이 적용될 수 있지만 사진 자체로 음란하다고 볼 수 없는 정도라면 성범죄에 관한 법률이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를위한청년변호사모임(새변) 공동대표 방민우 변호사(법무법인 한일)는 "명예훼손죄 성립이 가능하다. 그러나 본인이 스스로 데이팅 앱에 올린 사진이 공유된 경우 처음부터 불특정 다수에게 보여지는 것을 전제로 올린 것이기 때문에 성범죄가 성립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본다. 성적자기결정권이 침해됐다는 측면이 성범죄 피해의 본질인데, 성적인 목적이나 만남을 위해 스스로 올리거나 전송한 사진은 자의성이 있기 때문에 처벌되더라도 그 수위가 낮아진다. 대상이 주한미군이었으므로 안보적인 측면의 고려가 더 큰 사안이라고 생각된다"고 밝혔다.

'돈을 목적으로, 미성년자를 장기간 성적으로 착취해서 영상물을 만들어내고 그 영상물을 판매한 사건'인 N번방 사건과 이번 사건은 다르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그러나 해당 보도의 댓글창에서 가장 많은 공감을 얻고 있는 댓글은 "조주빈이랑 똑같이 처벌해야 정의구현이다"다. 어떻게 N번방 사건과 동일시되고 있는 걸까.

해당 사건이 처음으로 알려졌던 건 지난 5월 초 유튜버 P씨를 통해서였다. 51만회의 조회수(5월 23일 기준)를 기록하고 있는 해당 영상에서 P씨는 여초커뮤니티의 행태를 설명하며 "이런(여성이 가해자인 범죄) 건 절대 공론화되지 않는다. (남성이) 여자 신상 올려놓고 ○○싶다 후기 올려달라고 하면 전국에 있는 모든 여성단체, 언론매체가 다 일어나서 카페 폐쇄시키고 사과시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성별만 바뀌었다고 조용하다"고 주장했다. 누리꾼들 사이에서 악성 '사이버 렉카'로 알려진 구독자 100만여명의 유튜버 P씨의 채널에는 '여자랑 말싸움 잘하는 법 어떻게 싸우면 좋을까' '이런 여성 만나면 X된다 결혼 전 꼭 보세요' 등의 영상이 60만~200만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이후 A 언론사가 문제가 된 커뮤니티의 내용을 '84만 女카페서 '여성판 N번방'… 남성 나체사진 올리고 성희롱'이라는 제목에 "(2019년 N번방 사건) 당시 피해자는 여성이었고, 가해자는 남성이었다. 해당 여성 커뮤니티에서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성별만 뒤바뀐 채 비슷한 정보가 유통되고 있다"라는 내용을 포함해 보도했다.

즉 디지털성범죄 카테고리에 들어간다는 공통점만 있을 뿐 전혀 다른 범죄 행태가 같은 선상에 오를 수 있었던 건, 우선적으로 미디어가 남녀 갈등을 사업화한 데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절대적 범죄 행위 그 자체에 집중해 이슈가 된 것이 아니라 가해자의 성별을 비교하는 데 초점을 맞추면서 내용이 왜곡되었다는 것이다. 박선경 고려대 글로벌한국융합학부 교수는 "남녀 갈등이 표를 동원하기 위해 쓰이던 정치화를 넘어 이제 상업적인 수준이 됐다. 남녀 갈등은 이번 총선에서 딱히 이슈가 되지 않았지만, 돈벌이 수단으로 저열하게 쓰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가해자가 여성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는 주장 또한 미디어가 이슈를 극대화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던 것으로 확인된다. 남초·여초 커뮤니티에서 이뤄지는 이른바 '품평의 역사(남녀를 성적 대상화하고 몸매 등 외모를 평가하는 것)'는 꽤 오랫동안 문제로 꼽혀왔던 것이며 기성 언론에서도 다뤄진 바 있다. 예컨대 남초 커뮤니티에서는 동남아 현지 성매매 업소나 한국 성매매 후기 아카이빙을 하고, 일반인 소셜미디어(SNS)에서 셀카 등 몸매 사진을 동의 없이 가져와 품평을 하고 성희롱성 발언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여초 커뮤니티에서는 이번 논란 외에도 한 여성이 자신의 남자친구 성기 사진을 공개하며 크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등의 일이 있었다.

  photo. 남녀갈등 등 갈라치기 콘텐츠를 제작하는 P 유투버 채널의 영상.
  photo. 남녀갈등 등 갈라치기 콘텐츠를 제작하는 P 유투버 채널의 영상.


정치화를 넘어 사업화된 남녀 갈등

실제로 이같이 남녀 갈등이 정치화를 넘어 '상업화'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최근 변호사 등 법조계 인사들 중 남녀 갈등을 과장하고 이를 통해 자신을 무고죄 전문 변호사 등으로 홍보하는 행태가 많아졌다. 이들은 '대한민국 검사에게 거짓말하면 발생하는 일(꽃뱀녀의 최후)' '잠자리 하기 전 녹음부터 하라는 이유' 등의 자극적 유튜브 영상을 올리고 '억울하게 고소당한 남자들'을 위한 커뮤니티를 만들기도 한다. 방민우 변호사는 "한국에서는 무고죄 입증이 굉장히 어려운 편이라 남성이 불리한 위치라고 주장할 수 있지만, 실제 (꽃뱀과 같은) 사건이 일어나는 것에 비해 (변호사 유튜버들이) 과장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디어에서 다뤄지는 이른바 자극적인 '꽃뱀' 사례들과 가용성 편향을 이용해 남성을 불안하게 하고, 여성에게는 혐오감을 주는 등 남녀 갈등을 조장하는 것이다.

미디어가 상업적으로 구성한 'N번방' 프레임은 그대로 정치권에서 쓰였다. 허은아 대표는 이 사건이 보도된 당일인 지난 5월 16일 해당 사건을 "명백한 N번방"으로 규정했고, 나경원 당선인은 이로부터 4일 뒤인 20일 "허 대표의 시각에 100% 동의한다"며 "동일한 잣대의 엄벌, 이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기자는 두 정치인에게 '해당 논란이 남녀 갈등을 유발하려는 의도를 가졌다'는 주장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나경원 당선인은 "언론에 나온 내용만 보고 원본은 보지 못했다"고 답했다. 허은아 대표는 같은 질문에 "이 사안은 공정의 문제다. 성범죄 가해자의 성별이 무엇이든 피해자의 성별이 무엇이든 동일한 잣대로 처벌하면 될 문제다. N번방하고는 방식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같은 처벌을 받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죄질이 결코 가볍지는 않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기자가 '(피의자의) 성별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온다고 전제하고 말씀하신 것은 아닌 거냐'고 되묻자 "그렇다"고 답했다.

남녀갈등 등 갈라치기 콘텐츠를 제작하는 P 유튜버 채널의 영상.
남녀갈등 등 갈라치기 콘텐츠를 제작하는 P 유튜버 채널의 영상.


미디어와 정치권이 남녀 갈등 부추긴다

하지만 'N번방' 단어를 사용해 감춰져 있던 문제가 주목받고 해결에 가까워진다면 긍정적 측면도 있는 것 아닐까. 전문가들은 'N번방' 타이틀이 남용되었을 때의 문제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N번방 사건 당시 처음으로 '성착취'라는 용어를 한국에 도입한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조주빈 사건은 범죄 수익을 노리고 피해자들을 성착취한 사건이다. 구체적 내용은 무시한 채 두루뭉실하게 모두 N번방 사건이라고 엮는 것은 범죄의 심각성을 호도하고 혼란을 초래하기에 지양해야 할 행태다. 디지털 영상물의 제작 및 사건마다 경중을 따져서 분류하고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고 밝혔다.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 대표는 "N번방이라는 표현을 이번 사건에 붙이는 것은 범죄를 사소화시키는 프레임에 불과하다"며 이렇게 주장했다. "둘다 공평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N번방 같은 종류의 범죄를 희석시키게 된다. 우리가 살인과 폭력을 똑같은 수위로 생각하지 않잖나. 사진을 모아서 공유하고 품평하는 게 좋은 문화라고 할 수는 없지만,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것이다. 이 같은 프레임은 심각한 문제를 심각하게 보지 못하게 만드는 데 기여한다." N번방 사건 당시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처음으로 논평을 냈었던 박성민 전 청와대 청년비서관 또한 "N번방이라는 용어가 온라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성범죄를 통칭하는 말로 쓰여서 오히려 범죄의 심각성이나 본질을 오독하게 하고 실체가 가려지는 방향으로 쓰인다면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선경 교수는 "해당 사건은 남녀 갈등 사안이 아니라 그냥 범죄 행위다. 그러나 이것이 남녀 갈등으로 확장된 데에는 첫 번째로 사이버 렉카들의 행태가, 두 번째로는 이를 무차별적으로 받은 레거시 언론이 문제가 될 것이다. 온라인상의 극단적 남녀 갈등에 적극 참전하는 이들은 소수다. 이 소수의 강력한 말을 메이저 언론들이 계속, 무턱대고 받는 게 좋은지는 생각해볼 만한 문제다. 남녀 갈등이 불거지지 않기 위해서는 범죄의 경중으로 사건을 바라봐야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정치인도 책임이 있다. 논평을 할 때는 사안의 내용을 정확하게 알고 논평해야 한다. 그러나 주목받기 위해 자극적인 것만 보고, 사안을 잘 모르고 발언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니 얘기를 키우게 되고 남녀 갈등이 증폭된다"고 제언했다.

어찌 보면 '사소한' 갈등들이 모여 한국은 남녀 갈등 공화국으로 굳어버린 지 오래다. 2021년 여론조사기관 입소스가 28개국 2만3000여명을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남녀 갈등이 심각하다고 대답한 비율은 한국이 전 세계 1위였다. 그 비율이 세계 평균(48%)의 두 배 수준인 80%에 이르렀다. 이념과 빈부, 정당과 종교 갈등 또한 세계 1위를 기록했지만 남녀 갈등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심각도가 떨어졌다. 그러나 2022년 한국리서치의 '집단별 갈등인식 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 사회 발전을 위해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갈등을 묻는 질문에 남녀 갈등은 이념 갈등, 빈부격차 갈등에 밀려 6위를 기록했다. 한국의 가장 뚜렷한 사회적 단층선으로 지목되는 남녀 갈등이 해결순위에서는 밀리고 있는 것이다.

황근 선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교수는 "미디어 이론 중에 매체가 많아질 경우 동질화되거나 차별화된다는 이론이 있다. 한국은 동질화되어버린 경우"라며 "기성언론이 경쟁적으로 유튜브화되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황 교수는 "EU 같은 경우에는 최근 X 등 빅플랫폼 위주로 굉장히 강력한 미디어 규제를 통과시켰는데, 미디어에서 퍼지는 가짜뉴스, 혐오, 갈등 등 반사회적인 콘텐츠들을 강력하게 규제하는 동시에 그 공백은 기성언론과의 균형을 통해 정화해간다는 것"이라며 "EU 각국 정부는 공영방송 등 기성언론에 대한 지원을 많이 해서 팩트체크 역할을 하게 하는 등 차별화 노력을 많이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