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례평석] MSC Mediterranean Shipping Co SA v Conti 11 Container Schiffahrts-GmbH & Co KG MS 'MSC Flaminia' 판결
**작성자: 변호사 조명현, 변호사 홍재준**
1. 들어가며 : 11년 만에 내려진 결론
2012년 7월 14일, 대서양 한가운데를 항해하던 컨테이너선 MSC Flaminia 호에서 거대한 폭발과 함께 화재가 발생했다. 승무원 3명이 사망하고 선박과 화물에 막대한 손해가 발생했다.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2023년 9월, 영국 대법원은 이 비극적인 사고에서 파생된 책임제한에 관련한 법적 쟁점에 대해 최종적인 판단을 내렸다.
사건명 MSC Mediterranean Shipping Co SA v Conti 11 Container Schiffahrts-GmbH & Co KG MS 'MSC Flaminia'.
이 판결은 1976년 해사채권에 대한 책임제한 협약(Convention on Limitation of Liability for Maritime Claims, LLMC 1976) 체제 하에서 용선자의 책임제한이 미치는 범위를 확정하여 관련 법리를 획기적으로 재정립한, 현대 해상법의 가장 중요한 판례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판결의 핵심 법리를 소개하고, 해운 실무와 법률 시장에 던지는 시사점을 검토하고자 한다.
2. 사실관계 및 소송의 경과
**가.** 선주(Conti)는 용선자(MSC)에게 MSG Flaminia호를 정기 용선해 주었다. 그런데 용선자가 선적한 디비닐벤젠(DVB) 탱크 컨테이너의 폭발로 화재가 발생했고, 선박은 구조작업 끝에 독일 빌헬름스하펜으로 피난했다.
중재판정부는 용선자가 위험화물 운송 규칙(IMDG Code)을 위반했으므로 선주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정했다. 그러자 용선자는 영국 해사법원에 배상책임을 제한해 줄 것을 구하는 책임제한 소송(Limitation Claim)을 제기하였다.
**나.** 항소심 법원은 용선자를 선주와 같은 내부자(Insider)로 보아, 용선자가 또 다른 내부자인 선주에게 입힌 손해는 책임제한 대상이 아니라는 소위 '내부자 외부자' 이론을 재확인하면서, 용선자는 선박소유자가 입은 본래의 손실에 대해서는 책임을 제한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용선자는 위 항소심 판결에 불복하여 대법원에 상고하였다.
3. 대법원 판결의 요지
가. 주요 쟁점
* 용선자의 책임제한 적격: 용선자가 선주에 대해 발생한 손해에 대해서도 책임을 제한할 수 있는가? (즉, 항소심 법원이 인정한 내부자끼리의 책임제한 불가 원칙이 타당한가?)
* 선주의 손해배상 청구는 LLMC 1976상 책임제한이 가능한 '화물 손상' 청구인가, 아니면 불가능한 '선박 손상' 청구인가?
* 하나의 비용(예를 들어, 오염된 화물 제거비)이 '수리비(LLMC 1976상 책임제한 불가)'와 '화물 제거비(LLMC 1976상 책임제한 가능)'의 성격을 동시에 가질 때,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나. 판결의 요지
**1) 용선자의 對 선주 책임제한권 인정 ('내부자 외부자' 이론의 폐기)**
내부자-외부자 이론은 The CMA Djakarta [2004] 1 Lloyd's Rep 460 사건에서 유래했다. 당시 법원은 책임제한제도가 본래 선박 운항에 관여하지 않는 제3자, 즉 '외부자(Outsider)'의 청구로부터 선주 등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그러나 이 이론은 이번 대법원 판결로 폐기되었다. 대법원은 LLMC 1976의 문언상 '선박소유자(Shipowner)'의 정의(제1조 제2항)에는 소유자, 용선자, 관리인 등이 포함될 뿐, 이들 상호 간의 청구를 책임제한 대상에서 배제하는 명문의 규정은 없다는 점에 주목했다.
법원은 책임제한제도의 성격이 "선박 운항이라는 해상 모험(Maritime Adventure)에 참여하는 당사자들 간의 위험을 합리적으로 배분하는 장치"라고 규정하며, 용선자는 제3자뿐만 아니라 선주에 대한 채무에 대해서도 책임을 제한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2) 책임제한의 대상 여부는 청구의 법적 성격을 기준**
**가) LLMC 1976 제2조 제1항 a호의 규정**
LLMC 1976 제2조 제1항은 인명 사상이나 화물의 멸실·훼손과 같이 책임제한이 허용되는 채권을 구체적으로 열거하고 있다. 이에 해당하지 않는 채권은 원칙적으로 책임제한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위 제2조 제1항 a호는 "선박의 운항 또는 구조작업과 직접 관련하여 발생한 인명·신체의 손상, 물건(항만시설, 선거, 수로 및 항로표지를 포함한다)의 멸실 또는 훼손에 관한 채권 및 그로 인하여 생긴 결과적 손해에 관한 채권"을 책임제한의 대상채권으로 규정한다.
**나) 용선자의 주장: 인과관계 중심론**
용선자는 모든 손해가 최초의 화물 폭발에서 비롯되었으므로, 전체가 '화물 손상으로 인한 결과적 손해(consequential loss resulting therefrom)'로서 책임제한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그 논리는 다음과 같다. "① 컨테이너 내의 화물(DVB)은 제2조 제1항 a호의 '물건(Property)'에 해당한다. ② 이 화물이 폭발하여 멸실·훼손되었다. ③ 이 화물의 폭발로 '인하여(resulting therefrom)' 선박이 파손되었다. ④ 따라서 선박 수리비 청구권은 '화물의 멸실·훼손으로 인하여 생긴 결과적 손해'에 해당하므로 책임제한이 가능하다."
**다) 대법원의 판단 : 법적 성격 중심론**
용선자 측의 주장은 나름 창의적인 논리였으나, 대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은 책임제한 여부를 가르는 기준은, 사고의 원인이 무엇인지가 아니라, 청구권의 법적 성격이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즉, 선주가 청구하는 것은 '망가진 선박의 수리비'이며, 이는 제2조 제1항 a호의 대상인 '선상 재산(화물 등)의 손상' 청구가 아니다. 제2조 제1항 a호의 '결과적 손해'는 "책임제한 대상이 되는 물건(화물)의 손상으로부터 파생된 경제적 손실"을 의미할 뿐이다. 화물이 폭발하는 바람에 선박이 부서진 것은 화물의 결과적 손해가 아니라, 선박이라는 또 다른 물건에 대한 직접적인 손해에 해당한다. 따라서 선박 수리비 자체는 책임제한이 불가능하다. 책임제한의 범위가 무한정 확대되는 것을 경계한 판단이라 할 수 있다.
**3) 청구의 이중적 성격(Dual Characterisation)을 인정**
**가)** 대상판결의 백미는 대법원이 청구의 이중적 성격을 인정하였다는 점이다. 물론 대상판결의 의의를 논할 때,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내부자 이론을 폐기하면서 용선자도 선주에 대해 책임을 제한할 수 있는 자격 자체를 인정한 것이 단연코 먼저 꼽힐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다만 내부자 이론 폐기가 문을 열어준 것이라면, 청구의 이중적 성격을 인정한 것은 그 문 안에서 실질적인 구제를 가능하게 한 셈이다.
**나)**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사고 처리를 위해 지출된 비용 중 화물 제거 및 폐기 비용은 선박 수리를 위한 전제조건이므로 책임제한이 불가능한 '수리비'의 성격을 갖는다. 그러나 동시에 이는 협약 제2조 제1항 e호로 책임제한이 가능한 '화물 제거 및 무해화 비용'에도 해당한다.
**다)** 이에 대하여, 대법원은 "하나의 청구가 책임제한이 불가능한 성격과 책임제한이 가능한 성격을 동시에 가질 경우, 책임제한이 가능한 조항을 적용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선주가 모든 비용을 수리비라는 하나의 항목으로 묶어 책임제한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를 차단하고, 각 비용 항목을 세분화하여 분석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4. 실무적 시사점 및 대응 방안
가. 용선계약 실무의 변화
용선자가 선주에게도 책임을 제한할 수 있음이 명확해짐에 따라, 향후 선주는 용선계약 체결 시 방어적인 조항의 삽입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용선자는 본 계약상 선주에 대한 채무에 대해 책임제한을 주장할 권리를 포기한다"는 특약이나, 책임제한 범위를 초과하는 손해를 담보할 수 있는 광범위한 면책(Indemnity) 조항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반면 용선자는 자신의 권리를 유보하는 조항으로 맞설 것이므로, 계약 협상 단계에서의 치열한 줄다리기가 예상된다.
나. 해상 보험 시장의 재편 (P&I vs H&M)
선체보험자(H&M)가 수리비를 지급하고 용선자에게 구상청구가 들어갈 때, 과거에는 전액 회수를 기대할 수 있었으나, 이제는 용선자의 책임제한으로 인해 회수율이 떨어질 위험성이 커졌다. 이는 장기적으로 선체보험료 인상이나, P&I Club(선주상호보험조합)과의 위험분담 협약(Inter-Club Agreement; ICA) 개정 논의로 이어질 수 있다.
ICA는 선주가 가입하는 P&I Club과 용선자가 가입하는 P&I Club 간에 체결된 협정을 말한다. 주로 정기용선계약(NYPE 양식 등) 하에서 화물 손상 사고(Cargo Claims)가 발생했을 때, 그 책임을 선주와 용선자가 어떤 비율로 분담할지를 미리 정해둔 책임 분담 약정이다.
대상판결로 인해 용선자가 '화물 제거 및 무해화 비용' 등에 대해 책임을 제한할 수 있게 되었다. 기존에는 당연히 용선자가 부담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했던 비용을 용선자의 책임제한으로 선주 또는 보험자가 떠안게 되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선주와 용선자 간의 위험 배분 균형이 깨지게 되므로, 화물 관련 비용 분담을 규정하는 ICA의 기존 공식도 수정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
다. 소송 전략: 통합 vs 분리
대형 해난사고가 발생했을 때, 선주 측과 용선자 측의 전략은 극명하게 갈릴 것으로 보인다. 선주 측 대리인이라면, 모든 지출 비용을 책임제한이 안 되는 '선박 수리 및 복구를 위한 필수 비용'으로 묶어서 구성하려 들 것이다. 반면, 용선자 측 대리인이라면 청구 내역을 최대한 잘게 쪼개어, 그중 '화물 제거', '손해 방지' 등 협약상 책임제한이 가능한 항목(제2조 제1항 d, e, f호)을 어떻게든 찾아내어 청구채권의 이중적인 성격을 주장하려고 할 것이다.
5. 맺음말
대상판결은 해상기업 주체들 간의 위험 배분이라는 책임제한제도의 본질을 재확인했다. 영국법은 세계 해운 비즈니스의 준거법으로 기능하므로, 우리 법원이나 상사중재원 역시 이 판결의 법리를 비중 있게 참고할 가능성이 높다. 해상기업을 대리하는 변호사로서는 단순한 손해배상 청구를 넘어, 각 손해 항목의 법적 성격을 정밀하게 분석하는 고도의 전략적 접근이 요구될 것이다.
3) 해운 실무상 대부분의 표준 용선계약서에는 분쟁 발생 시 런던 중재(London Arbitration)로 해결한다는 중재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 이 사건도 소송 이전에 중재판정을 거쳤는데 용선자가 선주에게 약 2억 유로 상당의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판정이 내려졌다. 4) 한국법상 선박책임제한절차 개시신청에 해당한다. 5) 제1조(책임제한을 할 수 있는 자)... 2. "선박소유자(shipowner)"라 함은 해상 선박의 소유자(owner), 용선자(charterer), 관리자(manager) 및 운항자(operator)를 의미한다. 6) 제2조 (책임제한대상채권) 제3조 및 제4조의 규정에 따를 것을 조건으로, 책임의 원인이 무엇이든 다음 각 호의 채권은 책임제한의 대상이 된다. 7) (a) 선박의 운항 또는 구조작업과 직접 관련하여 발생한 인명·신체의 손상, 물건(항만시설, 선거, 수로 및 항로표지를 포함한다)의 멸실 또는 훼손에 관한 채권 및 그로 인하여 생긴 결과적 손해에 관한 채권 8) 예를 들어, 화물이 늦게 도착하여 공장 가동이 중단된 손해 9) (e) 선박 화물의 제거, 멸실 또는 무해화에 관한 채권
10) 해상 화물 사고가 발생하면 선주와 용선자 중 누구의 잘못인지 따지는 데 막대한 시간과 소송비용이 들기 마련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ICA는 사고 원인에 따라 책임을 기계적으로 나눈다. 이를테면, 감항능력 위반(선체 결함 등): 선주 100%, 상업적 관리 잘못(적부 불량 등): 용선자 100%, 원인 불명 또는 쌍방과실: 선주 50%: 용선자 50%